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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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렌서, 창업 준비의 시간도, 이직 준비의 시간도 아닌, 일과 삶에 대한 내 생각과 가치관에 집중하는 어떤 시간.
이러한 시간에 이름이 있다면, 이 시간을 누구든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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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갭이어(나를 재정비하는 시간)을 새롭게 알고, 내 진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책
그 어느 때보다 커리어 고민이 깊은 새해부터 선물로 받아 읽게 된 책이다.
한 장 한 장 곱씹으며, 어떤 문장은 크게 공감하고, 어떤 문장은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인상깊었던 책의 구절들을 소개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51p
"일에 대한 첫사랑, 첫 마음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문장들이나 누군가가 건넨 위로의 말들을 작은 노트에 차곡차곡 쌓아두는데 효과가 좋다. 위로에는 꽤 긴 생명력이 있어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들춰 보아도 그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1년차일 때, IT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한 자소서 중 중단기 목표를 적는 문항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10년 이내 좋은 시니어 기획자로 성장하고, 이후에는 창업하는 게 목표라 했다.
4년차인 나는 아직도 좋은 시니어 기획자를 만나본 적이 없고, 창업의 끝은 쓰디 쓴 실패만 남았다.
연차가 쌓일수록 내 목표에 가까워지기는 커녕 목표가 더이상 목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즉, 방향을 잃고 큰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돛단배 같달까.
다시 방향을 되찾기 위해 올 한해 동안 부지런히 움직여봐야지.
112p
"경력이 쌓이면서 실수와 실패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넘어지지 않으려 힘을 주다 보니 넘어지면 더 크게 다쳤다.
다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많이 넘어져본 사람의 경쟁력이자 자랑은 더이상 안 넘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잘 넘어지는 기술, 넘어져도 금방 털고 다시 일어나는 회복탄력성이었다."
지금껏 3번의 이직을 하면서 어쩌다 4년차가 되었는데 쓸데없는 눈치만 늘고 신입 때의 패기는 사그라들었다.
2년차 첫 퇴사를 했을 때와 지금 퇴사를 고민하는 나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첫 퇴사 때는 언제든지 이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잃을 게 없었기에 퇴사하고 제주도로 한달살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음 이직하는 곳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연봉은 인상할 수 있을지 등등 겁이 많아졌다.
나는 앞으로도 이직을 하게 될텐데 벌써부터 이런 걱정을 하다니,,
두려움 보단 어떤 위기도 금방 해결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도전하는 걸 멈추지 말아야겠다.
121p
"평생의 커리어라는 긴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완주해내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길을 헤매더라도,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더라도, 여하튼 무사히 끝까지 완주하는 것. 우리는 저마다 다른 여정을 각자의 속도와 방법으로 꾸려하고 있다. 누구보다 뒤처졌고, 앞섰고의 기준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여정을 말이다."
127p
"이후에는 만든 콘텐츠의 조회 수가 목표가 되기도 했고, 연봉이나 지위가 목표가 되기도 했다. 오래도록 품어왔던 목표보다 훨씬 현실적이었지만, 커리어를 길게 놓고 봤을 때 최종 목표, 과녁이라고 하기에는 목적보다 수단에 가까운 목표였다. 계속해서, 과녁 없이 일했다."
130p
"일을 하는 동안에는 평생 진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100점짜리 일, 100점짜리 직장은 없어요. 오히려 여러 직무,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내가 꿈꾸는 커리어에 비해 내가 부족한 점이나 직장의 아쉬운 점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채워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131p
"더 잘하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일하는 사람의 진로 고민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한 고민의 지그재그가 결국 유일무이한 커리어 패스를 만드는 것 같다."
145p
"나와 관련된 일들의 답은 사실 대부분 내 안에 있다. 그런데 이 답들은 어떤 내가 보기에는 실망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동안 ‘답이 없다’라거나 ‘답을 모르겠다’라고 외면해오던 것도 있다. 하지만 내 안의 이야기들을 얼마나 솔직하고 처절하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흔들린 이야기의 중심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200p
"그러게, 나는 왜 일을 잘하고 싶었을까.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잘하고 싶은 사람인가.’ ‘나는 일터에서 무엇을 위해 애쓰고 최선을 다해왔나.’ 이후로 오랫동안 일하는 자아에 대한 의심과 질문으로 헤맸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이다.
급하게 이직 준비를 하면서 '나는 계속 서비스 기획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의심이 계속 들었지만,
일단 이직이 급했기 때문에 덜컥 원하지 않은 회사에 발을 내딛었다.
수십 군데 지원하고 면접을 봤지만 합격보단 탈락을 몇 배로 많이 보면서 내 커리어에 애정이 식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내내 집중도 잘 되지 않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크게 들지 않는다.
갭이어가 필요한 순간인가? 하지만 모든 걸 (수입이나 소속감 등) 놓을 자신이 없다.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이걸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서두르지 말고 차근히 고민해보자.
213p
"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맥락에서 떨어져 새로운 감각으로 나와 세상을 볼 때만 얻을 수 있는 영감과 에너지가 있다.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혹은 사회가 이미 만들어놓은 어떤 맥락 안에서의 영감이 아닌 오롯이 나로부터 비롯된 영감. 이러한 영감과 에너지는 자존감과 자기확신의 씨앗이 된다."
223p
"일을 사랑하는, 사랑해서 더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향상심’은 단순히 성장과 승리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다. 과거의 나를 넘어서거나, 목표한 어떤 기준을 넘어셨을 때의 ‘감격’. 그 감격이 주는 짜릿함에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게 된다. 사실 감격이라는 감정은 훨씬 내밀하고 나 중심적인 것인데 일에서 느끼는 감격은 종종 상황에 가려져 그 본질을 잊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의 본질은 무엇인지, 내가 정말로 잘해내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지 스스로 더 잘 알게 된다면 향상심에 잡아먹히지도 않고, 무기력에 빠지지도 않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책 말미에는 지금 나에게 갭이어가 필요한지, 어떤 갭이어를 가질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6가지 질문들이 나온다.
1. 나는 퇴사를 왜 했는가? (혹은 왜 하려고 하는가?)
/ 퇴사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는가?
2. 일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가?
/ 기억하고 있다면 언제, 어떤 순간이었나?
/ 무엇이 나를 그토록 행복하게 했는가?
3. 지금 쉼을 선택하는 데에 날 망설이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 무엇이, 왜 두려운가?
4.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
/ 금전적 수입, 동료들의 안정, 일의 과정 그 자체 등
/ 일을 하면서 나에게 가장 큰 효능감을 주는 요인은 무엇인가?
/ 내가 일에서 성취해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5. 나에게 갑자기 충분히 많은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가?
/ 해야 하는 일(to do list)이 없어졌을 때, 우울해지지지는 않을까?
6. 삶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 삶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핵심적인 소비, 고정지출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위 내용을 노션에 정리하면서 지금 나에겐 갭이어 보다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해 보인다.
갭이어가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겠지만, 저자가 정의한 갭이어는 수입과 커리어가 사라진 '완전한 자유와 시간'을 의미한다.
결혼이나 더 먼 미래를 위해서 수입과 커리어는 포기할 수 없다. 일과 병행하면서 도전해보는 수밖에.
주위에 병행하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은 덕분에 외롭진 않다.
요즘 나의 고민을 깊게 생각해보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을 선물해준 미진이에게도 참 고맙다. 내 주위 커리어 고민을 하는 모든 이가 한 번 쯤 읽어보면 좋겠다.